Burning Man

하민석

매년 8월 마지막 일요일이 되면 신기루처럼 미국 네베다주 사막에 9일간 도시가 생겼다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는 황랸한 사막에 갑자기 임시 도시 '블랙 록 시티'가 생긴다. 그것도 단 9일간. 이 도시로 예술가, 과학자, 혁신기업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매년 7만 명 이상이 몰려든다. 여기에서는 신기한 아이디어가 실험되고, 자유로운 예술성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춤을 춘다.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마치 히피들을 위해 9일간 이어지는 광란의 축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축제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모여 원칙을 지키며 실험적인 생활을 해보는 '공동체'다. 이 공동체의 이름은 바로 '버닝맨'이다.

만약 운이 좋다면 이 신기루 같은 도시에서 구굴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페이지를 만날지도 모른다. 혹은 테슬라의 일론머스크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거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먼저 그곳에 가야겠지만..

실리콘밸리의 주역인 그들은 매년 열리는 '버닝맨'에 참여하는 열혈 '버너' [행사의 참가자]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여기에서 기업 운영의 아이디어도 얻었다고 한다. 일 년에 딱 9일만 황량한 네바다주 사막에 형성되는 '버닝맨'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20년이 35번째나 되는 제법 오래되고 규모 있는 프로젝트다. 매년 7만 명 이상이 참여하고, 공항 안내부터 응급서비스, 카페 관리, 기술 등 다양한 팀으로 이루어진 자원봉사자만 8천 명에 달한다. 프로젝트 기간 수많은 사람이 사막에 몰려가 임시 도시 '블랙 록 시티'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 도시의 크기는 서울 여의도 절반에 가까운 총면적 4.5km제곱 정도이다. 도시라고 보기엔 너무 작을지 몰라도 9일간의 짧은 기간에 생기는 이 도시의 인구가 네바다주 전체에서 인구 규모로 3위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블랙 록 시티가 건설되는 그곳에는 정말 아무런 기반 시설이 없다. 말 그대로 그냥 사막이다. 전기도 물도 없다. 버닝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버너는 9일 동안 자신이 지낼 텐트뿐만 아니라, 마실 물과 먹을 식량, 입을 옷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준비해서 와야 한다. 전기가 필요하다면 직접 만들어야 한다. 운영 조직에서 돈을 내고 구매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얼음과 커피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각자 가져가야 한다. 그렇다면 혁신가들은 왜 자신의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 버닝맨에 참여하는 것일까? 그것은 버닝맨이 단순히 비용을 지불하며 즐기는 오락거리나 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닝맨은 1986년 래리 하비가 편견 없는 공동체를 꿈꾸며 창조, 자유, 무소유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시작했다. '버닝맨'이라는 이름은 인형이나 사람 형상의 우상을 불태우는 컬트족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래리 하비가 자신을 형상화한 목각 인형을 태운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맨'이라는 사람 형상의 구조물과 임시로 건축한 사원을 태우는 의식이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로 자리 잡았다.

버닝맨 프로젝트 기간에 버너들은 자우롭고 신기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다. 사회에서 '이상한 것'도 이곳에서는 모두 허용된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서는 다양한 예술성이 펼쳐지고, 기이한 주제의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기상청외한 코스튬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원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버닝맨에는 10가지의 원칙, 혹은 신념이 존재한다.

1. 근본적 포괄성
2. 나눔
3. 비상업화
4. 근본적 믿음과 자립
5. 근본적 자기표현
6. 공동의 노력
7. 시민의 책임 의식
8. 흔적 남기지 않기
9. 참여
10. 즉시성

이러한 열 가지 원칙에 따라 버너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9일간 실험적인 생활을 한다. 그들은 예술, 파티, 요리, 탐험, 명상, 종교, 스타트업, LGBT 등 특정한 주제를 기반으로 테마 캠프를 만들고 이렇게 여러개의 캠프를 모아 빌리지를 형성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전체 캠프를 대표하는 시장을 선출하기까지 한다. 버너들은 9일간 이상적 도시를 구축하는 것이다.

버닝맨은 매년 새로운 아트 테마를 선정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17년에는 '급진적 의식' 이었고, 2018년에는 '아이 로봇'이었다. 2019년에는 '변성'이라는 아트 테마를 선정하여 진행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다중 우주'라는 테마로 모든것을 온라인으로 준비하고 실행했다. 버닝맨 운영조직과 버너들은 매해 부여되는 주제에 맞춰 다양하고 실험적인 여러 행사들을 준비하고 실행했다. 그렇다고 꼭 이 주제에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버닝맨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블랙 록 시티의 형성도 이러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2020년에는 블랙 록 시티가 온라인으로 만들어졌지만, 크로나19가 아니었다면 예년과 같이, 직경 2.4km의 부채꼴 모양의 시가지와 중심부인 오픈 스페이스, 그리고 주변부로 이루어진 오각형의 도시 블랙 록 시티가 구성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티는 조용함을 원하는 사람들의 지역, 매일 파티를 여는 지역 등 다양한 성향의 캠프와 뮤지션, 과학자, 기업가들의 캠프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다양성으로 인해 명상과 파티, 예술 행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각종 조형물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최되는 이 도시에서 요가 수업이나 캘리그래피 수업 등을 듣거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가나, 미니 콘서트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만의 미술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해가 지면 음악이 나오는데, 그 선율에 맞춰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춤을 출 수도 있다. 실로 자유로운 도시이다.

이러한 일시적 도시이자 공동체의 백미는 프로젝트 기간 중 토요일에 행해지는 '맨 번'이다. 중심부의 오픈 스페이스에 새워진 사람 형상을 한 구조물 '맨'의 주변을 수천 명의 버너가 둘러싼 가운데, 댄서들의 현란한 공연이 펼쳐지고, 최종적으로 맨에 불을 붙여 태운다. 마치 신비로운 종교의식 같다. 불타는 맨이 쓰러지면 버너들은 그 옆에서 명상하거나 춤을 추기도하고, 심지어 자신의 허물을 태우려는 듯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불 속에 던지기도 한다. 열광과 흥분, 정화가 공존하는 순간. 이후에 그곳에서 자신들이 만들었던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버닝맨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면 이 도시는 모두 불에 타서 사라진다. 그게 원칙이다. 사막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그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버너들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 안에는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으로 가득차게된다.

참조 -불타는 유토피아, 안진국